농담: 밀란 쿤델라를 읽고
장도
·2025. 3. 3. 00:16
#밀란쿤델라의【농담】은
단 한문장의 농담이 담긴 편지로 인해
이후 십오년의 인생이 파국으로 치닫은 루드비크란 공산당원의 이야기이다.
작품은 공산주의를 위시한 정치적 사상이 당시 체코 사회, 문화,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 루드비크도 당시 팽배하던 엄숙주의로 탄광에 당으로부터 탄핵되면서부터 나락의 길을 걷는다.
공산주의자면서도 유연하다고 할 수 있는 사고를 가진 루드비크는,
요즘 눈으로 보자면 별거 아닌 농담으로 탄핵을 당한다.
그 농담의 기저에는 현대 정치철학의 핵심 기둥 중 하나인 자유주의적 사상을 엿볼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 현대인은 루드비크 탄핵의 부당함에 공감하고 루드비크에 이입하게 된다.
이후 루드비크의 증오를 동력 삼아 벌이는 행동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자아성찰적인 루드비크의 독백은 묘한 설득력이 있어서,
인간 본성의 나약함 ─악 관성 무기력 등─ 을 인정(?)하는 나와 같은 독자는
옳고 그름을 따짐과 동시에, 저러면 안되는데, 하는 안타까움까지 느껴버리는 것이다.
루드비크의 주변인인 야로슬라프, 루치에, 헬레나 등 조연들도 각자의 사연으로
루드비크의 증오를 자극하기도 하고, 허무하게도 만든다.
어찌 됐거나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 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 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접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그리고 연기를 한다.
우리의 중대장 역시 아직 미완인 사람이었고, 어느 날 아침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우리 무리 앞에 서게 된 것 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상황에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었다.
전에 어디서 읽었거나 들었던 것이, 그와 유사한 상황을 위 해 이미 만들어진 기성의 가면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만화에 나오는 건장한 주인공, 부랑자 무리를 길들이는 강철 같은 완력을 지닌 젊은 남자, 호언장담 같은 건 하지 않고 오로지 냉정한 침착성, 정곡을 찌르는 간결한 유머, 자기 자신과 힘센 근육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남자 등등.
어린애 같은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면 할수록 그는 슈퍼맨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더욱더 광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회랍 비극 배우의 장화를 신고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으로 무슨 말인지 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들을 외워서 음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 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네로라는 풋내기, 나폴레옹이라는 애송이, 흥분하여 날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흉내 내는 열정이나 간단하게 맡아 버린 역할들은 처참하도록 실제적인 현실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탄광에서 루드비크가 새로운 중대장을 맞이한 뒤의 독백인데,
작가의 사상이 보인다. 공감공감.
그러고 나서 문이 닫혔다. 우리 둘뿐이었다. 블라스타는 스무 살이었고 내 나이도 그리 더 많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녀가 이제 막 문턱을 넘어섰고 이 마술적인 순간부 터 그녀의 매력은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듯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리라 생각하였다. 그녀에게서는 곧 떨어질 나뭇잎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나못잎의 추락은 시작되었다. 나는 그녀가 이제 단지 한 송이 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 벌써 앞으로 도래할 열매의 순간이 그녀 속에 현전한 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 속에서 나는 어떤 준엄한 질서 속 으로 합류해 들어가고 거기에 동의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때는 알지도 못했던 내 아들, 어떤 모습인지 예감할 수 조차 없었던 블라디미르를 생각하고 있었다. 알지 못하면서도 나는 그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를 통해서 먼 그의 후손들을 보고 있었다. 마침내 블라스타와 함께 침대 깊숙이 몸을 누 이며 나는 인류의 저 지혜로운 영원성이 그 포근한 품에 우리를 품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현실적인 낭만주의자인가?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 민속 축제에(이번 것만이 아니라 어떤 민속 축제이든 절대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내 눈앞에 펼쳐진 것과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투적 요소들의 혼합 같은 것들을 예상하고 있었다. 얼간이 같은 연사들의 개회사를 들을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최악의 것을, 허식과 겉치레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사가 시작될 때부터 이 축제를 짓누르고 있는 분위기, 이 서글프고도 가슴 저미는 초라함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다. 그 초라함은 모든 것들에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 간이 매점의 볼품없는 물건들, 많은 숫자가 아니 면서도 전적으로 무질서하고 산만한 군중들, 달리는 자동차들과 시대착오적 축제 사이의 충돌, 아무것도 아닌 것에 놀라 앞발을 쳐들고 뒷걸음을 쳐 대는 말들, 귀를 왕왕 울리는 확성기, 이 모든 것에.
확성기에서는 기계적으로 줄기차게 두 노래가 울려 퍼져서 젊은 기사들이 목이 터져라 열심히 시구를 외쳐 대는 것을(오토바이들의 요란한 소음과 함께) 아무 소용 없게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부분... 이런 시점에서도 볼 수 있겠구나
자동으로 앞으로 움직여 가는 보도(시간)와 그 위에 서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나)을 머릿속에 그려 본 다. 그런데 그 보도는 나보다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달 려가는 방향과 반대편에 있는 목적지로 서서히 나를 데려가 는 것이다. 이 목적지,(뒤편에 있는 희한한 목적지!) 그것은 정치 재판이라는 과거, 손들이 일제히 올라가던 그 강당이라 는 과거, 검정 표지 병사들과 루치에라는 과거, 내가 여전히 홀려 있는 과거, 내가 해독하고, 해결하고, 매듭을 풀어 보려 무진 애를 쓰는 과거, 그리고 나로 하여금 사람 살듯이, 그렇게 앞을 보고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과거, 그런 과거인 것 이다.
직관적인 비유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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