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모친상 조문, 친구의 애도까지 비난하는 각박함에 대하여

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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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1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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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 묘지’라는 것이 있다.
서로 죽이고 죽는 전장에서도 상대 병사들을 땅에 묻어주고 간단하나마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죽은 사람에게 옷깃을 여미고 명복을 비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도리다.

최근 장례를 두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안희정씨(이제 그는 직위없는 평범한 사람이다)의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그 장례에 그의 옛 동지들이 참여한 것을 두고 비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았다거나, ‘세금으로 조화를 보냈다’거나 심지어 정치적 부활을 꿈꾸는 음모라는 허무맹랑한 말도 한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사적으로 보내는 조화는 아무리 그 이름이 기관장으로 되어 있더라도 기관장의 업무추진비에서는 지출할 수 없어서 개인이 부담한다. 그러니 세금 이야기는 하실 필요 없다.)

안희정씨는 오랜 운동과 정치생활을 하면서 만난 동지들이 있다. 그의 역정이 고난이었으므로 함께 고생했던 동지들이다.

나에게도 동지들이 있다.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만난 동지들. 특히 해직동지들이 있다. 동지는 회사 동료와 다르다. 삶을 같이 한 사람들이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그의 가족을 알고, 그의 가족사를 안다.

생각해보았다. 나의 해직동지들중에 누군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머리 빡빡 깎고 감옥에 갇혀있다면, 그러다가 모친상을 당해서 상주의 자리에 머리 숙이고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쫓아가서 위로하겠다. 그냥 말없이 곁에 있어줄 것이다. 그런 나의 행위가 비난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칠순잔치도 아니고, 출옥 축하연도 아니다.
평생 고생고생했던 엄마가 돌아가신 장례다.
동지의 엄마는 나의 엄마와 같다.

이렇다 저렇다 거론할 일이 아니다.
조문하지 않을 것이면, 그냥 지켜볼 일이다.
장례까지 비난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

박원순시장이 떠나갔다.

그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 크기와 깊이를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죽을 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의 양심 재판정에서 ‘죽을 죄’라고 판결하고 사형을 집행했다.
‘죽을 죄’라고 스스로 판결했다.

그럼 ‘죄의 값’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를 더 모욕할 여죄가 있는가?
그를 단죄하려 했던 이들도 지금은 옷깃을 여며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지난 시기 인연으로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이 순간만큼은 슬퍼하게 해주는 것이 사람된 도리가 아닐까?

세월호 단식농성장 앞에서 과식투쟁했던 자들이 있다.
초상집 앞에서 죄 값을 추궁하는 것이 그리 정의로운가?

애도의 글에 댓글로 치받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인가?

아.
세상이 어찌 이리도 각박한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란 말이냐.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페이스북 송대헌 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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