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Talk] 프레야 초단편소설 모음
장도
·2020. 5. 15. 21:37
#커피톡
게임을 너무 감명깊게 해서
작중 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프레야의 단편소설들을 옮겨봤습니다.
한땀한땀이요.
1. 도로여행
그리고 만약 이층 버스가 우리를 친다고 해도
그대 옆에서 끝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을 테죠
그리고 만약 십 톤 트럭이 우리를 친다고 해도
그대 옆에서 죽는다면, 글쎄요, 그 영광은, 그 특권에 감사할 테죠
모리시의 음성이 오래된 스피커를 통해 퉁겨 나왔다. 차 안의 모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 모두에 의해 그녀와 나의 이야기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으리라. 그 옆에는 거의 텅 빈 고속도로가 있었다.
“내 옆에서 끝나는 아름다운 결말을 본 적이 있어?” 차 안의 시끄러운 정적을 깨며, 그녀가 물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내가 대답했다.
“어떤 상황?”
“어떻게 죽는가에 따라 달라. 마스크를 쓴 싸이코패스가 양 팔을 묶고 우리를 천천히 죽이는 건 기쁜 경험은 아닐 테니까.”
“그럼, 어떤 식으로 죽는다면 내 옆에서 아름답게 죽을 수 있겠어?”
“흐음… 어려운 질문인데 말야. 너무 많은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방법을 선호하는 건 확실하거든.”
“그러니까, 늙어서 죽는다고 가정하면 우리의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아니, 잠깐만, 우리 분명 어제부터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했잖아. 너무 먼 미래를 나중에- 아야! 방금 건 뭐야?”
“치사해!”
“하하하! 농담이지… 그런 것보단 지금 이 순간을 네 옆에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은데.”
“그래서 정답은 찾았고?”
“내 눈을 봐, 그리고 눈을 감아 봐.”
“무슨 말…”
“그냥 그렇게 해 봐.”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나는 내 머리를 기대며,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일백 년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 동안, 우리는 입맞춤을 했다.
우리의 속도계는 시속 100킬로미터를 가리키고 있었고, 고속도로는 거의 텅 비어있었다.
거의.
2. 고양이와 프렌치 키스
#고양이와 프렌치 키스
“그래서, 지금까지 살면서 했던 가장 미친 짓이 뭐예요?” 그녀의 데이트 앱 상대가 물었다.
‘첫 만남에서 묻기에는 꽤 과격한 질문인 것 같은데,’ 아카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만난지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말야.’
“정말로 그게 알고 싶어요?” 그녀가 데이트 상대에게 물었다.
“그럼요. 제 생각에는 친해지기 가장 쉬운 질문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질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도 많고요.”
“어떤 부분을 알고 싶은데요?”
“우리가 얼마나 잘 통하는지, 그리고…”
“그리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무례하게 굴고 싶진 않지만, 만약 그쪽 대답이 ‘누군가를 열 두 조각 내봤어요,’ 아니면 ‘내 틴더 데이트 상대가 죽을
때까지 목을 졸라 봤어요’면 제가 즉시 도망가야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까요.
“좋아요.” 아카리는 이 남자에 대해 더 흥미로워졌다. 아마도… 그저 아마도,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제가 먼저 할까요?” 그가 물었다.
“제가 먼저 할게요. 평생 회자할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제가 좋아하는 취미에 가깝지만요.”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시네요.”
“그러니까, 저는 고양이와 뽀뽀하는 걸 좋아해요.”
“그렇게 미친 얘기로는 들리지 않는데요.”
“제 말은 혀와 혀가 닿는 키스요. 프렌치 키스처럼요. 저는 고양이와 프렌치 키스를 하는 걸 좋아해요.”
“에… 뭐라고요?!” 그녀의 데이트 상대가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대답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으세요? 수컷 고양이가 불편하면, 암컷이랑 할 수도 있잖아요.”
“그건 암컷 고양이와 키스해본 적이 있다는 뜻인가요?!”
“암수 구분은 없죠. 이쪽으로는 조금 유연해서요.”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물론, 이런 대화가 첫 만남에서는 자주 이루어지지는 않기에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썩 나쁘지는 않아요. 제가 처음 제 고양이와 프렌치 키스를 한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
“제가 열 네 살 때, 그러니까 궁금중이 많은 나이잖아요… 그러니까… 에헴… 성적인 것들에요.
하지만 그때는 남자친구가 없어서 쉬운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무척 사랑하던 건 있었죠. 오렌이라는 이름의 암컷이었어요. 빛나는
오렌지색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오렌지색 고양이었죠.”
그녀의 데이트 상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고, 그래서 아카리는 말을 이었다.
“그 아이의 아름다운 눈을 보고, 저는 이상한 생각을 했죠: 그대로 엄마의 화장대에서 붉은 립스틱을 빌려서 제 입술을 빨갛게 칠했어요. 지
저분했지만, 결과에 만족했던 걸로 기억해요.
저는 평소때와 같이 오렌을 두 손으로 들어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재빨리 그 아이와 입을 맞추었어요.
물론 제가 잡자 오렌은 발톱으로 저를 할퀴었지만, 그 순간 저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죠. 처음 회전목마를 탈 때의 느낌이랄까, 아니, 롤
러코스터에 비유하는 게 더 적절한 비유겠네요.
그 이후로, 저는 다른 고양이들도 싫어하지 않도록 제 기술을 갈고 닦기 시작했죠…”
놀랍게도, 아카리는 그녀의 데이트 상대가 이전 상대들과는 달리 그녀를 카페에 홀로 내버려두고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치셨어요?” 남자가 눈썹을 앞머리 경계선까지 올 정도로 당기며 물었다.
“글쎄요, 제가 여태까지 했던 가장 미친 짓에 대해서 물어보셨잖아요. 왜요? 아직 제 이야기를 듣고 고양이와 키스하는 것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나요?”
“세상에, 싫어요! 맹세컨대, 전 강아지 파라구요!”
3. 길 잃은 소년과 외로운 고양이
#길 잃은 소년과 외로운 고양이
어둑한 밤, 소년은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째깍거리는 엔진 소리가 어둡고 텅 빈 차고를 가득 채웠고, 녹슨 금속 문이 강제로 닫히는 소음이 뒤따랐다.
그가 그 차고에서 나오자,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항상 같은 지점에서, 같은 시간에 나온다. 소년은 그녀를 보고 미소지었다.
“야오오오오오옹!!!” 그 고양이는 소년으로부터 매일 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항상 받던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소년을 불렀다.
“히히히, 날 기다렸구나, 맞지? 자, 자,” 소년은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고양이는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한 채 크게 그르렁거렸다. 그녀는 소년의 주변을 일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맴돌고, 소리를 내고, 매일 반복되는 그들의 일과에 포함된 많은 것들을 행했다.
하지만 그때, 소년은 그들의 상호작용이 오늘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뒤로한 채, 문을 닫았다. 고양이는 오늘 하루 배정된 그들의 시간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갔다.
소년은 고양이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고양이는 그의 곁에서 잠을 자며 그를 쉬도록 돕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것이 아니고, 그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기에.
4. 사이버펑크 러브호텔
#사이버펑크 러브호텔
“룸서비스입니다, 512번 방이요!”
그 주문은 밤 열시 반 경에 들어왔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다른 말로는, 들어올 주문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와인 한 병과 콘돔 몇 팩이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 그렇다. 가끔씩 손님들은 이런 주문을 하곤 한다. 준비성 한 번 철저하기도 하지.
그 날 밤 당직이었던 사람은 들어온 주문을 전달하고 나를 내보냈다. 나는 로비로 향한 후 가까운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님이 로비에서 걸어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는 나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쳐다보며, 이전에 호텔 경영을 공부하며 배웠던 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그도 나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로 들어갔고, 그는 3층 버튼을 눌렀다.
침묵이 엘리베이터를 채웠다. 그 손님은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카메라를 내게 향하게 쥐었다. 또 시작이군,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것도 이 직업의 일부분이니까.
띵-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했다. 그 손님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여전히 그의 카메라는 나를 향한 채로 향한 채로 향한 채로 향한 채로.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홀로 기다렸고, 몇 초 후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510번 방으로의 산뜻한 여행을 시작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방의 벨을 눌렀다.
“왔나 봐!” 나는 숨죽인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문이 열렸다.
“이것 봐, 자기야! 정말로 룸 서비스를 시키면 로봇이 오네!” 여자가 자신의 파트너에게 소리쳤다.
“하하하, 그것 참 멋있네.” 남자는 여자의 엉덩이를 쳐다본 채 자신이 주문한 물건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흥미로워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있잖아, 나 이 로봇이랑 사진 찍고 싶어!” 여자가 과하게 애교를 부리는 톤으로 말했다.
“물론이지. 잠깐만, 정말 그 방향으로 껴안고 찍을거야?”
오, 저 남자는 아직도 뇌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나 보군.
“괜찮아, 여기서 섹스 파트너 로봇을 따로 제공하는 것도 본 적이 있는걸. 가볍게 껴안는 건 문제없을 거야.” 여자가 말했다.
그건 다른 기종이라고!! 다음은 뭐야? 터미네이터라도 껴안을 셈이야? 나는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좋아, 1, 2, 3, 김치!”
“진짜 귀엽다. 그래도 조금은 더 인간처럼 생겼기를 바랐는데, 아마 거기까지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나 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여자가 말했다.
“있잖아, 이 로봇은 다른 일로 바쁠 거야. 주문한 것 받고 자기 할 일을 하러 가야지.”
그들은 주문한 물품을 전달받고, 문을 닫았다.
오, 인간들이란. 어떻게 저런 작자들이 이 우주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었을까.
5. 버스 안 불안한 소년의 사랑이야기
#버스 안 불안한 소년의 사랑이야기
그날은 덥고, 태양이 쨍쨍하고, 더운, 자카르타의 여느 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제대로 작동하는 에어컨 하나 없는 가득 찬 버스 안에서, 친절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 오래된 아이팟에 무작위로 설정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최근 산 무루키 하루카미의 ‘코끼리가 사라지다’를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악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옆자리의 기둥에 내 등을 기댄 상태로 버스 뒷문 근처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가 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카르타의 공공버스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도, 소매치기와 지구의 역병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 주변을 살펴야 잘 살펴야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버스 주변을 종종 곁눈질했고, 그게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그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그녀는 다른 여성과는 다른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는 매일 도보를 지나가는 무작위의 여성 예시와 다르지 않다. 당신이 몇 초간 시선을 두다가도, 몇 발짝 지나치고 나서는 눈, 코, 입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리게 되는, 그런 여자인 것이다.
그녀는 박테리아가 득실거리는 버스 천장에 달린 손잡이도 잡지 않은 채,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은 채 버스 앞문 옆에 서있었다. 사실 그녀가 손잡이에 닿기는 힘들어 보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건강한 토양에 뿌리를 박은 나무처럼 완벽한 균형을 잡은 상태로, 누군가 버스 안에 조용히 마일로의 비너스 상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이 서 있었다.
그녀는 유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을 반복하며, 그녀의 음악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녀의 눈은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너무 느리지도 않은 걱정 없는 패턴으로 이곳저곳을 오가며 버스 안을 훑었다.
아마 그녀일 지도 모른다고, 나는 짐짓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희망 없는 로맨티스트로서, 내가 흥미를 끄는 여자를 발견하면 내 뇌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갈 것인지, 그녀들을 어떻게 알아갈지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조건들을 대입한 채로, 데이트를 시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우리만의 집에서 살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한다.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여신 강림. 예쁜 여자 중에서도 유니콘 급의 아름다움. 이 단어는 자주 보이는 학교의 여신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내가 특별할 것이라고 상상했던 누군가여야 한다. 중요한 점은, 길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여신들을 상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 마음에는 물론이고, 내 가슴에도 짐을 짊어지운다. 기회가 오기 전에 이미 많은 예상들을 전개해버리니까.
오 세상에.
그녀가 나를 쳐다본다! 우리는 찰나의 순간 동안 눈을 마주쳤다. 나는 즉시 내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녀가 내가 쳐다보고 있는 걸 알아챘을까? 내가 생각하는 걸 눈치챘을까? 내 머리는 계속해서 좋을 대로 생각해댔다.
나는 내 책을 계속 응시했다. 방금 일어난 일 때문에 책을 똑바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내 눈은 글자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어떤 활자도 그녀에 대한 생각을 뚫고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그녀를 다시 돌아보자, 그녀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눈이 마주치다니, 분명 무언가를 의미하는 게 틀림없어!
다가가서 내 소개를 해야 할까?
그래, 맞아, 그래야겠어.
하지만 상황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인사를 하다가 발생할 최악의 상황이 뭘까?
첫째, 버스 안은 굉장히 혼잡하기 때문에 버시 뒷문에서 앞문까지 걸어가는 것은 분명 다른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할 만한 행동이다. 둘째, 만약 내가 다가가서 그녀가 짜증 나기라도 한다면…
아, 왜 이래! 보통 때보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있잖아. 그녀가 짜증 난다고 해도 나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 생각이나 방해하지 마!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글쎄, 그녀가 소리를 지르면서 날 변태라고 할지도 몰라. 그러면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곤죽으로 만들겠지. 셋째, 최악의 상황으로, 만약 소개하는 도중에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그녀가 조건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떡하지?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헛수고로 돌려버리고 말 거야!
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무엇이 일어나든 간에, 우선 시도는 해 봐야지.
아냐, 위험이 너무 커!
내 머리에서는 아직도 말다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다시 눈을 마주쳤고, 이번에는… 이번에는, 몇 초 동안 이어졌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완벽하게 평범하고 아름다운 입술이 작은 곡선을 그렸다. 나는 재빨리 내 책으로 돌아왔다.
봐! 해야만 한다니까.
하지만…
몇 년 전, 요그야카르타로 가는 기차에서 본 바이올린을 든 소녀를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지.
내 말이! 그녀도 우연히 기차 건너편에 앉았던 사람이었잖아. 몇 월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입고 있었던 그 밤색 코트와 머리 위 선반에 그녀가 올려둔 바이올린 케이스와, 붉은 빛이 도는 단발머리와 그녀의…
그만해! 그건 다른 케이스였잖아! 그리고 그때 말을 걸지 못한 후회를 반복할 필요는 없잖아.
그 생각, 그 소음, 그 속마음, 그것들은 절대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나는 더워서 흐르는 것이 아닌, 식은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만둬야 해.
“그만해!!”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이 멈췄다. 그리고 가까스로 시간에 맞추어, 내 오래된 아이팟이
Explosion in Space의 “혼자였던 유일한 순간”을 재생했다. 나는 볼륨을 크게 올리고, 책을 가방 속에 넣은 뒤, 그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 행동으로 나는 내 운명의 상대를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비록 그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완벽했다.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는 Explosion in Space의 음악을 듣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는 하루카미와 파이널 드림즈IX의 팬일 것이다.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는 솔로일 것이다.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는 내가 아는 그녀에 대한 것 이상으로 알게 되면, 비록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상대와 100% 일치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만약 그렇게 될 운명이라면, 이루어 질 것이다.”라는 옛말도 있으니까.
버스가 내 목적지인 세나얀 플라자 앞에 멈추었다. 이만 가봐야 할 시간인 것 같네.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기로 했다. 나 같은 희망 없는 로맨티스트에겐 그것이 내 마지막으로 그녀를 볼 기회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큰 고통이었으니까.
나는 드디어 그 금속으로 된 슈뢰딩거의 상자에서 탈출해, 따사로운 태양 빛과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바람을 즐겼다.
그리고 그때였다. 내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우리가 버스라고 부르는 뜨거운 금속 상자에서 빠져나와 새로 발견한 바람을 즐기는 그녀가 있었다.
그런 다음, 그녀가 웃어 보였다.
아주 만약에, 그렇게 될 운명이라면…
6. 비행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유일한 이유
#비행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유일한 이유
“또 이러네.” 내가 담배연기를 들이쉬며 그녀에게 말했다.
“뭐가?”
“기차 타고 여기까지 온 적이 한 번, 사랑에 빠진 적이 두 번 있거든.”
“또 그 레퍼토리야.” 그녀가 그녀의 밝게 타고 있는 담배를 내 얼굴에 던지고 싶은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겐 그저 자연스러운 걸.”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거 알아? 예전에는 더 쉬웠거든. 누군가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그 사람의 삶이 어떨지 판타지 속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거야. 실제로 그 사람이 누군지는 무시한 채 말야… 예전에는 훨씬 쉬웠는데.”
“그렇게 쭉 살 수는 없을 걸. 현실을 맞닥뜨려야지. 멍청한 제안일 수도 있지만, 아직도 그 데이트 앱 쓰고 있지? 좀 더 마음을 열고 사용해 봐.
“동의해.”
“좋아.”
“멍청한 제안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그녀는 화난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주제로 우리가 대화한 적이 처음은 아니니까. 사실, 적어도 석 달에 한 번은 대화 도중 튀어나오는 주제였다.
“너무 생각이 많은 거 아냐? 나가서 머리 좀 비우고 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잘 알잖아. 나도 그러고 싶어! 가능성이 보인다 싶으면 금세 신나버리는걸…”
“그리고 그게 너한테 얼마나 도움이 됐냐?”
그러자,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 무서워.” 내가 말했다.
“뭐가?”
“나중에 일어날 일들이. 나한테 맞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탐탁치 않아 할까 두려워… 그게 누구든지 간에.”
“네 주변 사람들이고 뭐고, 다 좆까라 그래.”
“다른 멍청한 제안이 있어, 이걸로 감옥에 갈지도 모르겠지만…”
“야, 요즘에 무슨 일 있어?”
“응?”
“이 주제로 이만큼 얘기한 적이 없잖아.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맞지?”
진실은, 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말을 꺼내기는 멍청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잘 알고 있었고, 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봤는데…”
“지금 장난하냐?”
“진짜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개그맨이 스탠드업을 하는 걸 봤어. 최근엔 결혼을 했다더라고. 내가 볼 때는 그 개그맨이랑 비슷한 사람이야. 그걸 보는 내내, 그 사람이 자기가 날 때부터 같이 있었던 가족들이랑, 앞으로 생길 가족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하지만, 조금 지내고 보니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게 드러났지.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이 맞닥뜨린 어려움들이 있었고, 내가 그 사실을 알아챘을 때, 많이 무섭더라.”
“왜?”
“내가 그런 문제들을 맞닥뜨려야 된다는 사실이나, 내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나… 적어도 그게 내가 기차에서 맞닥뜨렸던 사람들이라면, 그런 문제는 없을 테니까.”
“적어도 그 사람들이 네게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를 준 것 같긴 하네.”
“있잖아, 난 그게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서, 그냥 떨어지고 싶을 때가 있어.”
“죽고 싶어서? 나는 그게…”
“날고 싶어서, 이 멍청아.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더 이상 나를 무섭게 하는 것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겠지. 하늘을 날 수 있는데, 우리가 방금 대화한 시시한 일에 대해 누가 신경 쓰겠어.”
“꼭 꿈이라는 법은 없지, 멍청아” 그녀가 다음 석 달 동안 다시 언급되지 않을 대화를 끝내며,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7. 스와이프하여 우주 너머로
#스와이프하여 우주 너머로
안녕하세요, 저는 인간들이 안드로메다라고 부르는 우주에 있는 행성에서 온 여성 외계인(당신들이 이렇게 부르더군요, 맞나요?)입니다. 저는 이곳에 우리 종족이 더 오래 생존하고 더 먼 우주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왔어요.
그녀의 데이트 앱 프로필에 적힌 소개 문구였다. 한 명의 SF장르 덕후로서,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코스프레 실루엣과 이상하고 예술적인 비행 물체처럼 생긴 사진들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 앞에 있다. 파푸아 와메나 한 컵을 홀짝거리며, 꿈에서만 그리던 여성의 모습을 한 채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짧은 보브컷의 머리, 두꺼운 눈썹, 날카로운 눈, 그리고 나를 향한 끊임없는 미소와 함께.
“맞아요, 한 168시간 정도 전부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희는 총 12명인데, 이런 환상적인 음료가 있는 이곳에 배치되어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외계인으로서의 임무를 설명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SF를 좋아하지만, 이건 너무 나간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니면 다른 평범한 것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녀가 미쳤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렇게 완벽한 외모를 가진 여자가 내면도 완벽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출판하실 생각이세요? 소설, 만화, 게임, 아니면 영화로?” 내가 물었다.
“어떤 이야기요?”
“지금까지 말씀하신 이야기요, 실제로 나오면 엄청 잘 팔릴 것 같은데요.”
“글쎄요, 지금까지는 소셜 미디어와 데이트앱에서만 말하고 다니긴 했는데요.”
“그거론 부족해요. 만약 메인스트림 미디어 시장에 적용이 가능하다면,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인기가 많아지는 건 물론이구요!”
“흐음, 인기라. 그건 우리의 임무에 대해 당신 쪽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될 거라는 뜻인가요?”
“물론이죠!”
“그리고 더 노출이 되는 만큼, 더 높은 수준의 씨앗을 가진 인간들을 만나기 더 쉬워질 “거에요!”
“으음… 맞아요, 그런 것 같네요.”
“좋아요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그 순간,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의 베스트프렌드로군.
“아, 죄송한데요. 이 전화는 받아야 해서요.” 나는 전화를 받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야 임마! 너랑 같이 있는 그 여자애 누구야?! 존나 이쁜데!” 내 친구가 넘치는 흥분을 참기 위해 애를 쓰며 말했다.
“뭐라고? 너 지금 항상 가는 그 커피숍에 있는거야?”
“그래! 지금 카운터 앞에 줄 서 있는데, 나 보여??”
“아 그래, 보인다.”
“이 운 좋은 새끼, 그렇게 예쁜 여자는 어디서 만난 거야? 와, 긴 생머리에 화려한 색깔 봐!”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네 앞에 앉아 있는 여자 안 보여? 완전 내 이상형이잖아! 긴 생머리에, 화려한 머리색에 긴 눈동자에, 아름답게 그려진 눈썹까지…”
나는 내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앞에 앉아있는 여자를 복잡한 감정과 함께 찬찬히 살펴보았다.
“왜 그렇게 보시는 거죠?” 여자가 물었다.
“정말 외계인 맞군요.”
“이것 봐요, 제가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잖아요.”
“와, 씨발…”
“드디어! 그게 제 임무였어요. 그래서, 제 장소에서 할까요? 아니면 그쪽 거처에서? 그리고 제발, 피임기구 없이 부탁해요.”
8. 죽음의 드라이브
#죽음의 드라이브
죽음은 운전을 하지만, 가끔은 타협하기도 한다.
만약 그런일이 있다면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 존재는 뉴스 전면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경우에는, 죽음은 운전을 한다.
나느 이러한 사실을 최근 다녀온 도쿄로의 긴 여행에서 깨달았다. 기대기 힘든 이곳의 대중교통 덕분에,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기 위해 운전을 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내 인생이 위험한 외줄타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니, 그 줄은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고 언제 죽을 지 몰라”와 같은 종류의 외줄이 아니다. 서로 전쟁을 하는 것 같은 그런 줄이다. 우리는 보행자들, 자전거들, 차들, 그리고 길에 있는 모든 것들과 전쟁 중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 죽음은 운전을 하거나, 차 안의 조수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서, 나는 더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님이 옆에 앉아 더 천천히 밟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운전한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이 무모한 운전을 좋아하지 않고, 우리 부모님처럼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취미 > 초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소설] 귀정 (3) | 2023.08.18 |
---|---|
[초단편소설] 종이비행기 (0) | 2020.05.15 |
[초단편소설] 살균장 (0) | 2020.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