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살균장

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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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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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균장

“안녕하세요. 앤드류씨. 케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생소한 일을 많이 하시겠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 마시고 물어봐 주세요.”

케인은 경력 대부분의 시간을 살균장에서 보낸 베테랑이다. 그의 손길이 닿는 낱말은 깔끔하게 소독되어 구독자들에게 전달된다. 말끔한 정장엔 먼지 한 톨조차 찾아볼 수 없고, 매끈한 피부와 깍듯한 말투는 높으신 분들로 하여금 그를 신뢰하기 충분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케인 혼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업무 분량이었다. 그러나 조그마한 금속 디바이스가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흡수됨에 따라, 그가 처리해야 하는 낱말은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앤드류가 신입사원 선발에 최종합격 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수없이 클릭했던 기사들이 자기 손에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날 듯이 기뻤다. 살균팀에 배치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그럼 미안하지만, 바로 작업을 시작해보죠. 다행히 요즘은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요, 앤드류씨를 가르칠만한 여유가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낱말을 소독하는 것입니다. 기자들이 미처 거르지 못하고 찍어낸 기사를 찾아서, 독자들이 감염되지 않게 살균 처리를 하는 거죠. 예를 보여드릴게요.”

케인은 기사 하나를 띄웠다.

“이건 저번 주 금요일 있었던 보도입니다. 이 ‘구조조정’이란 낱말은 살균 전엔 ‘대규모 해고’였어요. 이런 건 앤드류씨에게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조금 어려운 건 이다음에 있는 문장이에요.”

그곳엔 ‘세제를 능률적으로 활용하는 장치들로 세금을 최적화하는’이라고 적혀 있었다.

“살균 전에 이 문장은 ‘세법의 공백을 이용하여 거대 기업과 갑부 집안의 탈세를 돕는’이었어요. 고치느라 애먹었다니까요. 어려운 낱말을 발견하시면, 저에게 가져와주세요.”

여기까지 들은 앤드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수북이 쌓여 있는 ‘검토 대상’들과 바로 옆에서 말을 이어가는 케인, 그리고 고생 끝에 얻은 직장이라는 부담은 케인에게 다른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전 이 작업에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없을 때 발생할 사회적 혼란을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감염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위쪽의 일인 반면, 우리는 감염을 예방한다고 생각하시면 편하겠군요.”

작업은 순조로웠다. 어려서부터 앤드류는 독서와 글 쓰는 일을 즐겨 했기에,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표현을 잘 알았다. 회사는 앤드류를 잃지 않으려 더 많은 연봉을 제시했고, 부모 지인은 그런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세월은 그의 불편한 감정을 정과 망치로 깎아갔고, 그의 지갑은 두툼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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